비뇨기과 이충범과장님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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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 2017-07-24| 조회수 : 5887 | |||
가 뭄
'저희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어요...' 고작 이 한마디 듣자고 아버지는 비좁은 서울의 응급실 한 켠 마른땅에 던져진 물고기처럼 힘없이 숨을 몰아쉬며 하루를 꼬박 누워계셨다 앰블런스 숨가쁘게 드나들고 커튼 너머 들려오는 비명소리 탄식소리에 두 눈 꼭 감고 누워만 계시던 아버지 '이제 집에 가유..' 희망없이 돌아오던 새벽길 휴게소 우동 한그릇 국물까지 시원하게 잘 드시고 집에 오자 대빗자루 손에 들고 마당부터 쓱쓱 쓸어 내셨다 바람은 저쪽으로 부는데 이 만치 서 있던 내가 마른 먼지에 괜시리 눈물이 났다 TV에서는 연신 가뭄에 말라 쩍쩍 갈라진 저수지 바닥이며 허연 배를 뒤집고 말라죽은 물고기들을 보여주고 '당신이 잘 먹고 기운내서 이겨내면 되는겨!...' TV를 끄며 어머니는 성치않은 걸음으로 진통제 한 알 아버지 입에 털어 넣으신다 허벅지에 꽉 찬 암세포들이 생살을 찢고 터져나오고 의사들은 기겁하며 손을 내젓는데 여든셋 어머니는 하루에도 세 번씩 피고름을 닦고 상처를 여며주신다 가뭄은 끝이 없이 계속되어 아버지 손등처럼 갈라진 논바닥 벼 잎사귀 노랗게 타들어가고 비가 올거란 희망도 타죽어가는데 어머니는 망설임없이 상처를 씻기고 거즈를 붙인다 하늘은 여전히 뜨거운데 거북등같은 저 메마른 바닥에 굵은 빗줄기 시원하게 쏟아져 갈라진 틈새를 메꾸고 죽어가던 물고기들 살아날 수 있다면 어머니 정성같은 약비가 내려 갈라진 상처를 아물게하고 우리 아버지 살아날수 있다면 그런 소나기 한 번 제발 내려만 준다면... 가 뭄 2 '죄송합니다...' 하루종일 잔뜩 찌푸렸던 하늘에선 끝내 비 한방울 내리지 않았다 기대는 탄식으로 희망이 원망으로 바뀌던날 아버지의 상처에선 감당할수 없는 피가 멈추지않고 흘렀다 지혈되지 않는 피가 침대 틀을 타고 흘러 깔아놓은 신문지를 적시고 장판위를 붉게 물들이며 거침없이 달음질칠때 아이고..아이고.. 아버지는 참기 어려운 신음을 토해내셨고 어머니는 금새 피로 물드는 거즈를 속절없이 갈아가며 분주했다 '아버지..서울 병원에 가유..' 시트에 신문지와 방석을 깔고 앉은 아버지는 못보던 새 운동화를 신고 계셨다 '병원에 가는데 무슨 새 운동화를..' 내 생각을 아셨는지 '이게 7년전인가 해외여행갈때 형구가 사준거여.. 담번에 또 갈까하고 애껴뒀었는디..' 뒷자리에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달리는 고속도로는 여유로왔다 어머니와 도란 도란 이야기하며 내다보이는 푸른 들판과 흰 구름에 문득 호젓한 가족여행을 생각했다 시트위 방석에 배어가는 검붉은 피가 아니라면... 차가 아산 병원 응급실에 멈춰서고 다시 몇 시간의 기다림 담당의사는 1주일분 진통제만 건네고 등을 돌렸다 상처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이 무섭다고 소독 잘하라며 그냥 돌려 세웠다 결국 지난번과 다를게 없네 이제 갈곳이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상처에서 피가 터지고 아버지는 고통에 힘겨워하시는데 어머니 혼자 더이상 감당할수 없는데 어느 한 곳 아버지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어느곳도 더이상 갈 곳이 없었다 그때 더이상의 희망을 포기해야할 바로 그때 서산 의료원 비뇨기과 이충범 과장님을 만났다 상처부위의 심각성에 '하!..이것 참!..' 몇 번이나 혀를 차시더니 '최선을 다 해보겠습니다' 듣고도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나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과장님은 바로 수혈을 진행하고 아버지의 건강 상태를 회복시키며 며칠뒤 의사로서 책임논란이 될수도 있는 어려운 수술 결정을 하셨다 아산 병원 통합진료센터의 여러 전공의들이 손 사레치며 깨어나지 않을 수 있다고 거부하던 위험한 수술을 과장님은 담담한 얼굴로 진행하셨다 '아버님 의식이 또렷하신데 말못할 고통이 얼마나 심하시겠나..' 아직도 아버지의 병환은 위중하다 하지만 수술덕분에 허벅지 가득채웠던 썩은 살들이 사라져 감염의 위험이 적어지고 그 위를 타고 넘던 피 또한 멈춘지 오래다 매일같이 상처를 소독하시던 어머니는 입을 다물지 못하시고 3주동안 나를 괴롭혔던 설사 또한 신기하게 멈췄다 아픈 가족이 있는 사람은 안다 그 아픔을 공감해주는 의료인의 한 마디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과장님의 이 한마디가 결코 쉽지 않은 약속임을 잘 알고 있다 이 말에 담겨진 의사로서의 공감과 책임과 현실의 무게를 감히 짐작할 수 있기에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할수밖에.. 이 밤 드디어 반가운 장맛비가 창문을 두들긴다 사람이 꼭 죽으란 법은 없는가보다 |